대형 사고 생존자의 심리적 회복: 무너진 삶을 다시 세우는 과정
작년, 뉴스 속 한 장면이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커다란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붉은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던 순간.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장면 속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을 마주하고 있다. 그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 그날의 책임자 중 한 명이었고, 무너진 공장에서 스스로도 심각한 화상을 입었으며, 이제는 법정에서 자신의 운명을 마주해야 한다.
불타버린 삶의 조각들
그는 하반신에 3도 화상을 입고 6개월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아직도 통원 치료를 받으며, 신체적 고통은 그의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드리운 가장 깊은 그늘은, 피부의 상처가 아니라 내면의 상처였다. 작은 연기 냄새에도 반사적으로 움찔하고, 문을 닫지 못한 채 항상 열어두려 한다. 마치 언제든 다시 도망칠 수 있도록 대비하는 것처럼. 밤이 되면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어도 현실과 악몽이 뒤섞인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짓누르는 것은 죄책감이었다. “내가 더 많은 사람을 구했어야 했는데…” 그의 목소리엔 깊은 후회가 배어 있었다. 살아남은 것 자체가 죄가 된 것처럼, 그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최근에 그는 첫 재판이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현실이 주는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물론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지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그의 삶, 역시 이어가야 하기에.
상실과 치유의 과정
삶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한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때로는 과거의 자신을 잃는다. 그에게 이번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그의 삶의 한 부분이 송두리째 사라진 사건이었다. 신체적 상처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역할, 명예, 확신까지도 잃었다.
나는 그에게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견뎌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입니다.” 생존자들은 종종 자신을 비난한다. ‘왜 나는 살아남았을까?’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날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함께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에 대해 이야기했다. 죄책감은 때때로 우리를 성장시키지만, 스스로를 파괴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사고를 고의로 일으킨 것은 아니잖아요.”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변화였다.
심리적 회복과 성장의 길
그에게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함께 시도해보기로 했다. 심호흡을 통해 긴장을 낮추고, 특정 자극(연기 냄새, 폐쇄된 공간)에 대한 노출을 점진적으로 연습하며, 수면 환경을 개선하는 법도 고민해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법적 절차 속에서도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는 것이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지칠 수 있어요. 감정을 완전히 차단할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 걸음씩, 그리고 천천히 걸어야 한다.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지만, 그 기억이 자신을 집어삼키게 둬서도 안 된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번 사건을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했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우리는 상처를 통해 변한다. 그는 아직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그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서서히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불길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가 언젠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살아남았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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